채집 일지 · 2024년 3월

돌에서 색으로: 서울 인근 산에서 안료를 캐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북한산의 사암과 안양천의 점토는 입자가 다르고, 입자가 다르면 발색이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서울 인근 안료 채집의 기준을 적습니다.

8분 읽기 · Magnet Platform 작업실 기록

산길에서 원석을 캐는 장면
북한산 기슭, 3월 아침. 주머니에 빈 병 하나와 막자 하나.

채집은 아침 일찍 시작합니다. 햇빛이 강해지면 돌의 색이 다르게 보입니다. 같은 돌이라도 아침의 그림자 속에서는 철 함량이 더 정확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채집은 대개 해 뜨기 전에 시작해 한 시간 안에 끝냅니다.

서울 인근에서 안료가 되는 재료는 크게 세 종류입니다. 산의 바위, 하천의 점토, 그리고 식물의 껍질입니다. SOL에는 산의 바위에서 온 산화철이 가장 많이 쓰였고, 하천의 점토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식물의 껍질은 보조 색으로만 썼습니다.

같은 붉은색, 다른 입자

북한산 기슭의 붉은 사암은 철 함량이 높지만 입자가 거칩니다. 갈았을 때 모래처럼 굵은 입자가 남아, 캔버스에 올리면 붓이 걸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거친 입자가 오히려 빛을 받으면 색이 일어나는 효과를 줍니다. SOL의 밑바탕에 쓴 것은 이 사암입니다.

안양천의 점토는 입자가 곱습니다. 물에 저으면 우유처럼 퍼집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사암보다 부드럽고, 마르면 분필처럼 덮입니다. SOL의 중간 층에 쓴 것은 이 점토입니다.

같은 색이라도 어디서 왔는지가 색의 성격을 정한다. 채집지를 적는 것은 색의 출처를 적는 것이다.

채취 지점을 적는 이유

채집 일지에는 날짜, 날씨, 채취 지점, 그리고 그날 가져온 돌의 무게를 적습니다. 같은 북한산이라도 기슭의 남쪽과 북쪽이 다릅니다. 비가 온 다음 날의 돌은 마른 날의 돌보다 철이 더 씻겨 나가 있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같은 색을 다시 만들 수 없습니다.

SOL에 쓰인 11가지 안료는 모두 채취 지점이 정해져 있습니다. 의뢰를 받을 때도, 의뢰인의 공간에 어울리는 채집지를 먼저 정합니다. 색은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가져오는 길

채집한 돌은 주머니에 담아 작업실로 가져옵니다. 가져오는 길에 돌이 서로 부딪혀 깨지지 않도록, 돌 사이에 잎을 한 장씩 끼워 넣습니다. 이 잎은 작업실에 오면 버립니다. 하지만 이 잎이 끼인 시간이 돌의 온도를 조금 바꾸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아마 바꾸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적어둡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가져온 돌을 가루로 갈는 과정을 적겠습니다. 돌을 가는 데는 한 색당 이틀이 걸립니다. 그 이틀 동안 돌의 색이 어떻게 가루로 옮겨가는지를 적겠습니다.